이제 와 돌아보니 즐거웠더라



이제 와 돌아보니 즐거웠더라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학창시절 부터 지금까지 그에 맞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통해 역량이 키워지면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만큼 고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도 많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연들을 모았다.


베트남생활에 도움을 주신 그분은 바로

자산운영팀 이영채 매니저
베트남 주재원으로 근무했을 때입니다. 베트남에서는 Grab이라는 어플을 통해 사람들이 택시나 오토바이를 자주 이용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거의 대부분의 요금을 현금으로 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중요하죠. 그런데 기사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자칫 덤터기를 쓰는 일이 허다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잘못하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길을 반나절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틈틈이 오른쪽, 왼쪽, 여기서 세워주세요, 괜찮아요 등 생존을 위한 베트남어 공부를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어난 미터기 요금에는 잘 통하지 않더라고요. 베트남어는 성조가 6개라서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고 싸우는 것도 그들에겐 익숙해서 답이 없어요. (ㅠㅜ)

그러던 어느 날, 동료와 함께 길을 걷다가 광고판 속 한국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이름하여 ‘박항서’. 2002년 우리나라의 축구역사를 히딩크가 다시 썼던 것처럼 당시 베트남에서는 한창 박항서 감독이 축구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걸 보며 함께 있던 베트남 동료에게 “너, 저 사람 알아?”라고 물어봤더니, 오히려 저에게 “오 마이 갓! 무슨 소리야? 너야말로 저 사람 몰라? 바!캉!서! 베트남에서 엄청 유명해!”라며 엄지를 치켜드 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고급정보(?)를 입수한 저는 택시에 타서 기회를 노리다가 “아임프롬코리아. 두유노 박항서?”를 외쳐보았습니다. 결과는? 즉시 택시호구 탈출! 요금장난을 치던 택시기사들이 매우 매우 매우 줄어들면서 거짓말처럼 우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바캉서(박항서) 넘버원! 팍지송(박지성) 넘버투! 손훵마은(손흥민) 넘버쓰리!”라고 합니다. 이후 저는 베트남어를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많은 팁들을 깨우쳐갔죠. 더불어 박항서 효과로 제 주재원생활은 무난하게 흘러갔습니다. 나중엔 택시기사들과 한국vs일본전을 함께 응원하거나 베트남vs태국전(우리나라vs일본전과 같음)을 함께 응원해주기도 했네요. 제 택시비를 세이브해준 박항서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중국어지만 중국어 같지 않은 중국어인 건 맞는 그 말투

HR1팀 박선영 책임매니저
대학생 시절, 중국어를 잘하고 싶어서 어린 마음에 대만 드라마 DVD를 사서 통째로 외우겠다는 다짐 하에 본적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유성화원>으로, 대만판 <꽃보다 남자>였죠. 저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20번 보겠다는 목표로 실제 1년간 20회 정도 반복해서 봤는데... 진짜 대사가 다 외워지고 중국어실력이 확확 늘더라고요. 문제는 아뿔싸! 중국어를 잘하게 되긴 했는데 대만식 억양이 입에 배 약간 사투리를 배운 격이었어요. 그래서 어딜 가도 제가 중국어를 조금만 하면 “너 혹시 중국어를 대만에서 배웠니?”라는 소리를 듣고 있답니다. 여러분!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해 현지어를 반복 청취하실 때는 그 말이 얼마나 보편적인 억양인지 확인하고 나서 시도하셔요! ㅎㅎ

신입의 열정으로 최선을 다했던 동기들에게

정보보안팀 박동호 책임매니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당시 입사했던 회사의 동기들과 SAP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험을 소개합니다. 때는 1999년 늦은 봄, 여의도 SAP교육센터에서 3주 교육을 받고 마지막날에 시험을 보는 거였는데, 평일·주말 할 것 없이 열심히 공부해가며 땀 흘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지금은 시험결과가 실시간으로 나 오지만, 그때는 1달 뒤 우편으로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대형 우편봉투를 받고는 얼마나 떨렸는지…

그때 시험준비를 열심히 했던 게 밑거름이 되어, 이후 저는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99년도 봄이 참 가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버틸 수 있는 힘과 노력하면 된다는 교훈을 새겨주었으니까요. 당시 함께 노력했던 옛 동기들아, 잘 지내고 있지? 우리 어디서든 그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

2021.07.01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학창시절 부터 지금까지 그에 맞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통해 역량이 키워지면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만큼 고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도 많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연들을 모았다.

 

베트남생활에 도움을 주신 그분은 바로

자산운영팀 이영채 매니저
베트남 주재원으로 근무했을 때입니다. 베트남에서는 Grab이라는 어플을 통해 사람들이 택시나 오토바이를 자주 이용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거의 대부분의 요금을 현금으로 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중요하죠. 그런데 기사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자칫 덤터기를 쓰는 일이 허다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잘못하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길을 반나절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틈틈이 오른쪽, 왼쪽, 여기서 세워주세요, 괜찮아요 등 생존을 위한 베트남어 공부를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어난 미터기 요금에는 잘 통하지 않더라고요. 베트남어는 성조가 6개라서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고 싸우는 것도 그들에겐 익숙해서 답이 없어요. (ㅠㅜ)

그러던 어느 날, 동료와 함께 길을 걷다가 광고판 속 한국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이름하여 ‘박항서’. 2002년 우리나라의 축구역사를 히딩크가 다시 썼던 것처럼 당시 베트남에서는 한창 박항서 감독이 축구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걸 보며 함께 있던 베트남 동료에게 “너, 저 사람 알아?”라고 물어봤더니, 오히려 저에게 “오 마이 갓! 무슨 소리야? 너야말로 저 사람 몰라? 바!캉!서! 베트남에서 엄청 유명해!”라며 엄지를 치켜드 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고급정보(?)를 입수한 저는 택시에 타서 기회를 노리다가 “아임프롬코리아. 두유노 박항서?”를 외쳐보았습니다. 결과는? 즉시 택시호구 탈출! 요금장난을 치던 택시기사들이 매우 매우 매우 줄어들면서 거짓말처럼 우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바캉서(박항서) 넘버원! 팍지송(박지성) 넘버투! 손훵마은(손흥민) 넘버쓰리!”라고 합니다. 이후 저는 베트남어를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많은 팁들을 깨우쳐갔죠. 더불어 박항서 효과로 제 주재원생활은 무난하게 흘러갔습니다. 나중엔 택시기사들과 한국vs일본전을 함께 응원하거나 베트남vs태국전(우리나라vs일본전과 같음)을 함께 응원해주기도 했네요. 제 택시비를 세이브해준 박항서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중국어지만 중국어 같지 않은 중국어인 건 맞는 그 말투

HR1팀 박선영 책임매니저
대학생 시절, 중국어를 잘하고 싶어서 어린 마음에 대만 드라마 DVD를 사서 통째로 외우겠다는 다짐 하에 본적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유성화원>으로, 대만판 <꽃보다 남자>였죠. 저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20번 보겠다는 목표로 실제 1년간 20회 정도 반복해서 봤는데… 진짜 대사가 다 외워지고 중국어실력이 확확 늘더라고요. 문제는 아뿔싸! 중국어를 잘하게 되긴 했는데 대만식 억양이 입에 배 약간 사투리를 배운 격이었어요. 그래서 어딜 가도 제가 중국어를 조금만 하면 “너 혹시 중국어를 대만에서 배웠니?”라는 소리를 듣고 있답니다. 여러분!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해 현지어를 반복 청취하실 때는 그 말이 얼마나 보편적인 억양인지 확인하고 나서 시도하셔요! ㅎㅎ

신입의 열정으로 최선을 다했던 동기들에게

정보보안팀 박동호 책임매니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당시 입사했던 회사의 동기들과 SAP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험을 소개합니다. 때는 1999년 늦은 봄, 여의도 SAP교육센터에서 3주 교육을 받고 마지막날에 시험을 보는 거였는데, 평일·주말 할 것 없이 열심히 공부해가며 땀 흘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지금은 시험결과가 실시간으로 나 오지만, 그때는 1달 뒤 우편으로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대형 우편봉투를 받고는 얼마나 떨렸는지…

그때 시험준비를 열심히 했던 게 밑거름이 되어, 이후 저는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99년도 봄이 참 가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버틸 수 있는 힘과 노력하면 된다는 교훈을 새겨주었으니까요. 당시 함께 노력했던 옛 동기들아, 잘 지내고 있지? 우리 어디서든 그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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