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에 따뜻한 휴먼터치를 더하라

언택트화 될수록 인간적 접촉을 그리워한다, 디지털 패러독스

몇 달 전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한 가게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 서빙해주고 있었다.  나도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더니 만든 시간은 1분 30초, 가격은 캠페인 기간이라며 할인해서 2,900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고 주문하는 고객들도 꽤 많았다. 나도 로봇이 만들어준 커피라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바로 올렸다. 그이후 서너 번정도 다시 들르긴 했는데 금방 식상해졌다. 테이크 아웃으로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도 없을 뿐더러 커피 로봇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처음과 달리 참신해 보이지 않았고 더구나 커피 맛은 그냥 평범했다.

로봇 카페와 레스토랑이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가 커진 이유 중 하나는 ‘인스타그래머블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하다는 뜻)’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 팔이 춤추면서 커피를 만드는 모습은 처음 한두 번은 재미와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결국은 상품의 본질, 맛과 고객 경험이 장기적으로 안정된 비즈니스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레스토랑이라면 음식의 맛, 카페면 커피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그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따뜻하고 세심한 고객경험이 디자인되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비대면 서비스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에 의해 언택트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사람과 사람, 관계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피로에 스스로 방어벽을 세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관계를 그리워하며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스마트 기기는 SNS를 통한 타인과의 교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함으로써 오히려 현대인의 외로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패러독스(Digital Paradox)’현상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로 언택트 현상이 가속화될수록 비즈니스나 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인간과의 단절이나 대체가 아니라, 인간적 접촉을 보완해 주는 역할이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언택트 기술이 ‘휴먼터치(Human Touch)’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휴먼터치는 인간적인 손길을 기술로 만들거나 기술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재한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결정적의 순간’은 디지털 기술로만 완성될 수 없다. 고객과 진정한 공감대를 끌어내고, 전체와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은 아직 인간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결정적 순간은 따로 있다, 휴먼터치

국내의 한 대학병원은 환자가 수술실에 도착하면 환자의 동의 하에 주치의 선생님을 비롯한 전 의료진이 환자의 몸에 손을 얹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도를 한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이 ‘기도하는 의사’프로그램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병원이나 기업에서 고객들은 기업과 거래하면서 여러 차례 ‘결정적 순간(MOT,Moment of Truth)’을 맞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기능적으로 완벽한 기계(well-functioned machine)’보다 ‘인간적인 것’, 즉 ‘나와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는 존재’에 더 끌린다. 로봇 커피가 처음에는 혁신적으로 보였겠지만 카페에서 고객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커피 머신이 아니라, 바리스타의 손길과 직원의 미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부각되는 시대에서 휴먼터치가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의 감성적 손길이 결정적 터치포인트가 된다는 점에 있다.

휴먼 터치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한 생명보험사의 상담사로부터 ‘인공지능(AI) 설계사의 등장으로 앞으로 설계사가 없어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고객에게 상담을 해주는 설계사는 숙련된 인력이 담당한다는 점에서 높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설계사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험상품 설계는 단순히 가격 비교뿐만 아니라 상호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교감 하에 가정과 개인의 미래를 상담해 주는 특성 때문에 ‘인간’ 설계사의 역할을 ‘인공지능’설계사로 완벽하게 대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콜센터는 디지털이 상담사를 보조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에 놓여야 한다. 1차적으로 챗봇과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같은 인공지능 기반의 가상 에이전트(Virtual Agent)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그들이 다루지 못하는 전문적이고 인간적인 영역에서 인간 상담사(Live Agent)에 의한 하이터치 상담을 제공하는 고객 맞춤형 대응 전략이 되어야 한다. 챗봇에 의해 필터링된 분량만큼 생산성은 향상된다. 이른바 ‘블렌디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 스타벅스 CEO인 케빈 존슨의 애기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디지털화는 바리스타가 음료를 만드는 데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수고를 덜고 그 수고를 고객에게 인간적인 손길을 건네는 데 사용하라는 의미다.

차가운 기술에 따뜻한 휴먼터치를 넣어라, 세가지 터치의 기술

우리는 지도를 보며 길을 걷다가 헤매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목적지로 가는 방향과 방법을 물으며 도움을 청할 때가 있다. 고객들도 인터넷에 갇혀 있거나 셀프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답답해 하며 사람을 찾을 때가 있다. 이때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셀프 서비스 시스템이나 디지털 기기에만 맡기지 않고 사람의 손길로 성의껏 해결해 주고자 하는 ‘비효율적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스타일링 서비스로 유명한 의류 회사, 스티치픽스(stich Fix)도 사용자가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구성해 추천 시스템에 적용한다. 인공지능의 선택 다음에는 소비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주기 위해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거친다. 스티치픽스의 스타일리스트 수는 3,000명에 달한다.  스타일리스트의 오랜 경험과 세련된 패션 감각을 기반으로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더 세심하게 옷을 골라주는 것이다.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서비스에 식상한 고객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하고 안락한 서비스로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은행이 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본사를 둔 움프쿠아(Umpqua)은행으로 ‘고객이 머물고 싶은 은행’이라는 컨셉으로 공간과 서비스 자체에 휴먼터치적인 감성을 느끼도록 재구성함으로써 뉴욕타임스로부터 “움푸쿠아는 은행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은행은 호텔에서 옮겨온 듯한 안내 데스크가 손님을 맞이하고, 무료 인터넷 카페부터 움푸쿠아 브랜드 커피, 투자상품을 소개하는 투자센터,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터치스크린 모니터 등을 설치했다. 이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매장에 들어왔다 다시 나가 간판을 확인하거나 “여기 은행이 맞아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였다.

출처: Micah Solomon, Customer Service Secrets Of Umpqua Bank, aka Retail Banking’s ‘World’s Greatest Bank’, 포브스(Forbes)

디지털 기술과 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국내에서도 휴먼 터치를 구현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의 ‘리틀빅 이모션(Little Big e-Motion)’은 어린이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치유형 장난감 자동차로, 탑승자의 표정·호흡·심장박동수 등 생체 신호를 측정해 이에 따라 반응하는 감정 인식 차량 컨트롤(EAVC:Emotion Adaptive Vehicle Control) 기술이 탑재돼 있다. 이 차량은 어린 환자들이 불안한 기분을 느낄 때면 터치스크린 속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주거나, 달콤한 사탕 향기를 분사해 긴장감을 풀어주도록 함으로써 환자들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아이들 마음과 교감하는 키즈 모빌리티 리틀빅 이모션 -2021 레드 닷 어워드 최우수상 수상 | 아이오닉 5 미니 유튜브 캡쳐

그럼 구체적으로 휴먼터치를 우리 서비스의 어느 영역에 배치해야 할 것인가. 크게 물리적 터치, 심리적 터치, 언어적 터치로 구분할 수 있다. ‘물리적 터치’는 제품 또는 환경과 같은 물리적 요소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휴먼 터치를 말한다. 앞서 움푸쿠아 은행 사례가 물리적 터치에 해당한다. ‘심리적 터치’는 앞서 대학병원의 ‘기도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언어적 터치’는 직원들의 ‘공감적인 대화’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따뜻한 눈빛, 배려를 담은 정성스러운 제스처, 정중한 인사처럼 보디랭귀지 형태로 전달되기도 한다.

어느 골프장에서의 이야기다. ‘한 타라도 줄여주는 스코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골퍼들에게 더 즐거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골프장에서는 산악 지형의 어려운 코스에 냉면 그릇 크기만한 홀컵을 준비했다고 한다. 냉면 크기의 홀컵은 회사에서 마련한 물리적 터치와 심리적 터치를 고려한 설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코스도 어렵고 플레이어들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캐디가 나섰다. “얼마나 코스가 어려우면 저희가 큰 홀컵 이벤트를 준비했겠어요. 이만큼도 아주 잘치신 거예요.”라고 말했다면 이는 언어적 터치에 해당 할 것이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종말을 전제로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서비스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서비스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앞으로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비대면과 디지털화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피부는 점점 더 휴먼터치적인 원시 본능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란 점도 잊지 말길 바란다.

장정빈(스마트 경영연구소 소장)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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