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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고 선택에 책임지며 아우르는 가치관을 가져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찾아낸 사유와 판단의 책임

아이히만은 반인륜적인 나치스의 가치관을 생각 없이 신봉한 사람이다.
양심을 저버린 것마저 자기합리화로 포장하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의 인생은 교수형으로 끝나 한줌의 재가 됐다.
직장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불합리한 지시나 양심에 꺼리는 일은 없었는가?
가치관의 혼란을 느낀 적은 없는가? 인간이라면 왜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글. 편집실


“이 정도 가져간 게 뭐가 죄가 됩니까? 이게 무슨 국가 핵심기술입니까?”
“저는 위에서 지시한 대로 했을 뿐입니다.
잘못된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위 내용은 회사의 핵심기술을 중국에 빼돌려 막대한 손해를 끼친 사람이 국정원에 검거돼 진술한 내용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정원에서 적발한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은 모두 130건에 이른다. 경찰청 산업 기술 유출 수사대가 적발한 사건도 최근 5년간 6백 건이 넘고, 검거한 인원은 무려 1,700명이 넘는다. 일명 산업스파이라고 하는 이들은 대부분 성실하게 일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그들은 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악인이 되어버렸을까? 그 해답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찾으려 한다

옳고 그름은 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1960년 5월 11일 저녁 6시 30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시골길. 아이히만은 늘 하던 대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하차하자 즉시 세 사람이 그를 체포해 대기하던 차에 싣고 떠났다.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었다. 특히, 6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의 이동, 수용, 학살에 깊이 관여했다.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숨어 지냈다. 그러나 15년간 그를 쫓던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는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를 납치해 이스라엘 법정에 세웠다.

재판이 시작되자 세계의 이목이 아이히만에게 집중됐다. 법정에 입장한 아이히만의 모습이 TV에 중계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6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죽인 악인은 우락부락한 괴물처럼 생겼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이웃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한나 아렌트는 재판을 취재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다.

“나는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
나치 법률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공무원으로서 복종하는 것이 의무였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생각의 무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무능이 괴물을 만들 수 있으며,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지금 나는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고 지시된 명령은 생각 없이 실행하는 기계의 부품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평범한 당신도 산업스파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악인이 될 수 있다. 만약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생각이 무뎌졌다고 느껴지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성찰을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살려내야 숨어있던 악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면 자기합리화가 시작된다

1942년 1월, 독일 국가 차관회의에 아이히만이 서기 자격으로 참석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아이히만이 존경하던 권력의 핵심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정책을 추방과 수용에서 학살로 변경했다. ‘최종 해결책’이라고 불린 이 계획은 유대인들을 학살 센터로 이동시켜 그들 중 힘센 사람들은 사역과 학살장치를 가동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즉각 처형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때 아이히만은 추방과 수용정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대량학살계획 앞에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양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위층의 대량학살에 대한 거리낌 없는 표현과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며 그의 양심은 권위에 복종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본디오 빌라도에 비교하면서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으로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음에도, 유대인의 요구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한 인물이다. 이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아이히만도 양심을 자기합리화로 포장했고, 그 순간 유대인 대량학살 전문가가 되어 악역을 수행하고 만 것이다.

혹시 조직에서는 이런 엄청난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가? 상사의 지시대로 했다가는 회사가 위기에 빠지는데도 내 책임이 아니라며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다. 현실은 냉혹하다. 관련자, 동조자, 방조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와 부하직원이 같이 공감해야 할 실험결과가 있다.

1961년 예일대 밀그램 교수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라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징벌에 대한 학습효과 측정’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선생의 역할을 맡았고 학생 역할은 연극배우를 고용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학생이 질문에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15V씩 전기충격을 가하는데 최고 450V(사망할 수 있음)까지 올릴 수 있었다. 밀그램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최대치로 올릴 것을 강요했고, 65%의 참가자들이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사람이 죽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양심을 저버리게 만든 것이다. 밀그램 교수는 이를 ‘권위와 명령에 따른 인지 부조화 현상’이라고 말했는데, 악의 평범성과 연관돼 많이 인용된다.

이 실험에서는 타자의 고통이라는 관점으로 상황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을 때 양심과 윤리성이 없어진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기업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양심과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거나 막대한 손실을 보게 돼도 담당자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부조리로 가득 찬 상사의 횡포에 은근히 잘못되기를 바라고 무책임하게 문제를 방치할 수도 있다.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는 양심은 불안정한 업무처리와 기회만 되면 이직하려는 생각만 키우게 만든다. 그래서 리더는 언제나 소통의 창을 열어두어야 한다. 부하직원들이 양심을 저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사심 없는 협업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고의 야망은 중요한 독일인 거주지의 경찰서장으로 승진하는 것이었다.


아이히만의 출세욕은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나만 괜찮으면 돼’라는 가치관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꿈꾸는 야망, 경찰서장으로 승진되는 것뿐이었다. 여러분은 조직 속에서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가? 혹시 ‘나만 괜찮으면 돼’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특정 업무가 맡겨졌는데, 그 사람에게는 그 업무가 맞지 않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도 못했다는 것을 팀원들이 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잘못될 걸 알면서도 침묵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다. 그러고는 ‘그 사람이 잘하든 못하든 나랑은 관계 없잖아’ ‘이럴 때는 나서지 않는 게 인간관계의 기술이야’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이는 조직 차원에서 보면 현실 왜곡, 위기 진단 실패, 심지어 윤리적 사고 실종 등으로 변질될 수 있는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개인의 사심 없는 협동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각 개인이 수십 년간 경험하며 쌓아온 가치관을 한순간에 변화시키기는 어려운 걸 안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윤리를 조직문화로 연결하고 시스템화한다면 공감과 협업의 가치관을 내재화할 수 있고, 그런 조직이라면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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