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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부채-선풍기-에어컨으로 읽는 시원함의 역사

우리 조상들은 정월대보름이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내 더위 사가라”를 외쳤다.
‘더위팔기’라 부르는 세시풍속이다. 지금은 기억에서 다소 희미해졌지만
더위를 피해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부채-선풍기-에어컨 발전사를 통해 시원함을 추구해온 여름 나기의 역사를 소개한다.
글. 편집실



다채로운 부채 역사의 미학

더위를 식히는 가장 오래된 도구는 부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부채를 사용해왔다. 기원전 2000년 무렵, 고대 인도와 소아시아의 철기국가인 히타이트 부조에도 부채가 등장했고, 기원전 1500년께 고대 이집트 벽화에는 종려나뭇잎 부채를 들고 왕을 수행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서는 부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는데, 견훤이 고려 건국을 축하하는 의미로 공작의 깃으로 만든 둥근 부채, 공작선을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부채의 종류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방구(方球) 부채’로 부챗살에 비단이나 종이를 붙여 만들며, ‘둥근 부채’라고도 불린다. 방구 부채는 부챗살의 모양과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또 여러 모습을 하는데, 부챗살의 끝을 휘어 오동나무 잎맥 모양으로 만든 오엽선, 가운데 태극 모양을 그려 만든 태극선, 공작의 깃으로 만든 공작선 등이 있다.

두 번째는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접부채’다. 1076년에 중국에서 편찬된 「도화견문지」에 ‘고려 사신들이 접부채를 사용했는데 산수, 화조, 인물 등을 그려 넣어 매우 아름답고 신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접부채도 부챗살의 수와 부채 꼭지의 모양에 따라 여러 명칭이 있다. 마디가 있는 대를 사용한 죽절선과 대나무 껍질을 종이처럼 얇게 깎아 두 겹으로 부챗살을 맞붙여 만든 합죽선 등이다.

접부채에 관해서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부챗살 수에도 제한을 뒀다는 것. 왕실 직계만이 부챗살이 50개이고 종이가 100번 접힌 오십살백접선을 쓸 수 있었고, 사대부는 사십살, 이하 중인과 상민은 그보다 살이 적은 부채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의 부채예찬론

‘손으로 부쳐 바람을 일으키는 채’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부채의 기능이 더위를 쫓는 것에만 그치진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부채 팔덕이라며 부채의 다양한 기능을 예찬하기도 했다. 8가지 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더위를 쫓고, 둘째 햇빛을 막거나, 셋째 비를 막는다. 넷째 파리나 모기를 쫓고, 다섯째 방석으로 사용하거나, 여섯째 밥상으로 사용한다. 일곱째 머리에 이고 물건을 나를 수 있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리는 차면 (遮面)의 용도로도 쓰인다.

이뿐인가? 판소리에서 소리꾼은 흥을 고조시키거나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부채를 활용했고, 선비들은 부채에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단오절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달력)이요’란 속담이 있을 만큼 우리 조상들은 부채를 사랑하고 많이 활용했다. 비록 지금은 그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부채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존재다. 그러니 이번 단오엔 소중한 사람에게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까지 시원하게 날려줄 부채를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올해 단오는 6월 14일이다.



선풍기에 부는 새로운 바람

선풍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지금이야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일제강점기 말부터 광복 직후까지 ‘잡종세’라는 세목이 있었다. 이름 그대로 부과대상이 잡다한 세금인데, 그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선풍기였다. 금고나 피아노를 소유해도 잡종세를 물었다고 하니, 당시엔 선풍기가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최초의 선풍기는 1600년대 서양에서 발명됐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추의 무게를 이용해 기어장치의 회전축을 돌려 부채를 시계추 모양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원리였다. 선풍기가 기계화되기 시작한 건 1800년대 초, 중동에서 사용된 ‘푼카’로 알려져 있으며, 1800년대 말에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공장의 물레바퀴 전력으로 벨트를 움직여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가 개발됐다. 지금처럼 전기를 이용한 선풍기는 1882년 에디슨이 만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보호망을 씌운 선풍기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에도 1960년, 금성사가 만든 최초의 선풍기가 등장했다. 금성사는 ‘D-301’이라는 모델명을 붙이고, ‘시원한 바람 염가로 불어주는 금성 선풍기’라는 제목의 신문 광고도 냈다. 비록 D-301은 1년 만에 단명했지만 D-301이 일으킨 바람은 널리 퍼져 나갔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됨에 따라 선풍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집집마다 선풍기가 빠르게 보급된 것이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바람의 세기나 강약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리모컨도 생겼다. 탁상형, 천장형, 스탠드형 선풍기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선풍기의 디자인만큼은 날개를 돌려서 바람을 만든다는 기본원리로 인해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2009년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를 내놓으며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선풍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즘 선풍기는 공기청정이나 가습, 심지어 LED 스탠드를 겸하는 등 새로운 기능을 더하며 진화해 나가고 있다.



인류 문명과 산업 발전을 이끈 에어컨

우리나라 최초로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정답은 석굴암이다. 원래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연적으로 습기를 방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일제가 석굴암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결국 불상에 결로가 생기고 화강암이 침식됐다. 이에 1960년대 우리 정부에서 석굴암을 다시 조사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습기를 조절하기 위해 1966년 국내 최초로 에어컨을 설치한 것이다.

에어컨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계기는 서글프지만, 에어컨은 인류 전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전이기도 하다. 에어컨이 있었기에 인류는 더위라는 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에어컨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그 답은 윌리스 캐리어다. 1902년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는 에어컨을 발명했다. 당시 캐리어가 다니는 회사는 인쇄소로부터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개발을 의뢰 받았다. 여름만 되면 고온과 습기 때문에 인쇄용지가 변질돼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캐리어는 어느 날 안개 낀 피츠버그 기차 승강장에서 공기 중의 습기를 조절하는 장치에 대한 영감을 얻고 에어컨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회사를 나와 창업한 캐리어는 1922년, 넓은 공간의 공기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터보냉동기’를 발명한다. 이 기술 덕분에 백화점, 극장, 호텔, 병원 등에도 에어컨이 도입됐다. 이후 지속적인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에어컨은 고효율·친환경·저소음을 추구하며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공기청정과 난방 기능이 추가돼 사계절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에어컨과 인공지능과 결합한 스마트 에어컨도 등장했다. 최근 몇 년간 캠핑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휴대용 미니에어컨 시장도 커지고 있으며, 웨어러블 에어컨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사람들의 삶과 생활패턴이 달라짐에 따라 앞으로도 에어컨은 무궁무진하게 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컨은 단순히 덥냐, 시원하냐의 문제를 넘어 의료와 산업의 발전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일까. 찌는 듯한 무더위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는 이렇게 말했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도 없었을 것이다. 에어컨은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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