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수단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기자는 출입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회사에 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러 차례 이직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일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달까. 내 경우에는 때로는 적응이 힘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자극으로 작동했다. 침체하는 언론 산업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거나, ‘이런 세계가 있었네’ 하는 흥미로움을 안겨줬다. 후자는 전자에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기도 했다.

10여년의 기자 생활 동안 정치부와 사회부가 주 터전이었다. 일간지에선 정치부와 사회부가 주요 부서로 인식된다. 중요한 사회적 의사 결정이나, 주요 사건들은 이곳에서 벌어진다는 막연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부로 오는 순간 그런 인식은 완벽한 오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산업부, 그 중에서도 자동차를 출입하게 된 건 이런 점에선 행운으로 생각한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그리고 단순한 ‘탈 것’에서 거대한 스마트폰의 형태를 띄게 될 ‘미래차’로 전환하는 시점에 서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될 변화의 흐름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정치부나 사회부에서 보던 세상과 산업부에서 보는 세상은 속도부터가 달랐다. 슬로우모션처럼 움직이던 세상이 16배속으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와 사회 이슈는 해결되지 못한 채로 갈등이 반복되거나 일부만 바뀔 뿐이다. 반면 기술이 중심이 되는 세상은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동안 모르고 있던 세상에 비로소 눈을 뜬 느낌이다.

자율주행으로 달라지게 될 인간을 상상하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환경이 위기라고 하니까, 그래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한다고 하니까. 이런 전기차 전환을 두고 가졌던 단순한 생각은 조금이나마 자동차 산업을 가깝게 지켜보면서, 자평하자면 약간은 깊어졌다. 탈 것의 진화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뿐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산업 혁명처럼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바꾸는 대전환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은 신차를 타보는 것부터 시작됐다. 내 차는 10년 가까이 됐다. 그런 내게 전기차를 타는 일, 그리고 최첨단 주행 보조 기술을 경험하는 일부터가 새로웠다. 흔히 ‘스마트 크루즈’라고 불리는 자율주행 레벨 2 단계의 주행 보조 기술은 특히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발을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에서 떼도 된다니.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 경험은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자율주행 업계에선 레벨 4 단계부터를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으로 분류한다. 레벨 4부터는 운전자는 대체로 운전을 잊고 승객으로 지낼 수 있다.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손과 발은 물론 눈까지 모두 자유로운 상태다. 주행 중에 잠을 잘 수도 있고, 승객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영화를 봐도 된다. 이 상태에서 이동 수단은 거대한 회의실이 될 수도 있고, 한 가정의 거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레벨 4 단계는 아직 먼 미래로 느껴진다. 하지만 레벨 3는 이미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하반기 출시를 예고한 기아 EV9 GT나 제네시스 G90에는 레벨 3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진 현대차그룹의 차에 레벨 3 자율주행이 탑재된다는 건 곧 한국인의 이동 생활의 커다란 변화를 뜻한다. 레벨 3 단계에서는 고속도로 같은 특정 조건에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옆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잠은 잘 수 없지만, 전방을 보지 않아도 되고 손과 발이 모두 자유롭다. 그리고 이런 운전자들을 올해 하반기에는 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내 옆 차로에, 혹은 같은 차로의 내 앞차와 뒷차가 레벨 3 자율주행으로 주행할 수도 있다.

법도 이미 준비가 돼 있다. 법을 보면 레벨 3가 완전히 다른 운전 환경이란 점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 4월20일 시행된 도로교통법 제2조에는 ‘운전이란 도로에서 차마 또는 노면전차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조종 또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을 말한다’고 돼 있다. 직접 조정하지 않고 자율주행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도 운전으로 정의된다. 도로교통법 제50조 2항은 “자율주행 시스템을 사용하는 경우,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금지 등 일부 운전자 주의의무가 완화된다”고 규정돼 있다.

일부 고속도로 구간에 한정되긴 하지만, 운전 중에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전방을 계속 주시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의 출퇴근 시간은 한 차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변화는 이동에 대한 인류의 인식 자체를 바꾸게 된다. 이동 시간이 여가 시간이자 여전히 근무시간이라면? 사람들이 주거지를 선택하는 조건을 포함해서 다양한 변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기자의 업무는 늘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 자율주행 시대에는 이동 시간은 근무에 혹은 휴식에 쓸 수 있는 ‘보너스’가 될 걸로 기대된다.

이동의 변화는 운송과 배송의 변화로

자율주행 시대, 새로운 탈 것의 시대는 운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글로비스의 영역인 물류에서는 오히려 더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탈 것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육상을 주 무대로 삼았던 자동차 회사들이 도심항공교통(UAM) 분야에 적극 뛰어드는 것도 한 예다. 자율주행은 승용 분야보다 물류 분야에서 더 적용이 빠를 수 있다. 승용차보다 차량의 상태를 점검하는 게 더 필요한 분야가 운송과 배송에 쓰이는 차량이다. 자율주행 차를 타고 배송을 하는 화물운송업자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KAIST 도시항공 이동성 쿼드콥터

라스트마일 배송을 담당하는 드론과 UAM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이런 시대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새롭게 바꿀 것이고, 삶의 방식도 다르게 만들 것이다. 탈 것의 변화, 이동 수단의 변화가 인간의 삶 전반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역사의 중심에 자동차 산업, 넓게는 달라지는 ‘탈 것’의 산업을 지켜보는 건 나에겐 행운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직원들이 보는 세상과 비교하면 너무나 작겠지만.

경향신문 박순봉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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