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 격변기 현대글로비스의 생존법

지난달 경기 수원역 인근의 대형 중고차 단지에 취재차 방문했을 때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을 우려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걸 봤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인증 중고차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마뜩잖게 여겼던 중고차 딜러(판매업자)들이 붙여 놓은 것이다. 두 회사는 10월쯤부터 인증 중고차 판매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부터 일찍이 중고차 경매 사업에 뛰어들었던 현대글로비스에 이어 올해는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차와 기아까지 합류하며 중고차 시장의 지각 변동이 예고됐다.

인증 중고차란 제조사가 직접 정비와 점검을 마친 중고차를 의미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제조사가 브랜드 명성을 걸고 꼼꼼하게 확인한 제품이기 때문에 침수차를 잘못 구매하거나, 하자가 많은 차를 속아서 살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감이 생긴다. 반면 기존 중고차 딜러들은 대기업의 시스템과 자본력에 밀려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다.

중고차 판매 현장에 직접 나가보면 중고차 딜러들의 성토를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많지만 결국 대기업이 서민 밥그릇을 빼앗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이 대다수다. 서울 강서구의 한 자동차 딜러는 현대차와 기아가 ‘연식 5년 이하, 주행거리 10만 km 이내’의 A급 중고차만 취급하는 것을 거론하며 “영세 중고차 업자들은 좀처럼 팔기 힘든 악성 물건만 떠안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중고차 업자는 “중고차 딜러 중에 밤에는 대리기사나 배달 업무 같은 ‘투 잡’을 뛰는 사람들이 이미 많다”며 “현대차와 기아를 필두로 향후 KG모빌리티까지 인증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면 딜러들은 더욱 먹고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출격하지 않더라도 중고차 딜러들의 입지는 이미 매우 좁은 상태이긴 하다. 중고차 판매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상대적으로 오프라인에서 강한 딜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현대글로비스가 지난해 1월 내놓은 중고차 중개 플랫폼인 ‘오토벨’을 비롯해 ‘헤이딜러’, ‘케이카’ 등 온라인에서 중고차를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플랫폼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지만 대체로 감정평가사가 중고차 판매 희망자를 직접 찾아가 차량 상태를 확인한 뒤 딜러나 회사가 제시한 금액이 마음에 들면 매도자가 거래에 나서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중고차를 살 때에도 딜러와 대면해 옥신각신할 필요 없이 플랫폼에 제시된 가격과 차량 상태를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플랫폼상에서 판매자들끼리 이미 가격 경쟁이 붙기 때문에 딜러가 이윤을 크게 남기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코스피 상장사인 ‘케이카’의 경우에는 회사가 직접 매입해 품질을 인증한 물건을 팔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안심이 된다는 측면이 있다. 더군다나 케이카는 단순 변심이라도 3일 이내라면 배송료만 받고 환불도 해준다. 중고차 개인 딜러를 통한 거래에서는 ‘환불 불가’인 경우가 대다수여서 소비자 불만이 많다는 점을 노린 정책이다.

결정적으로 중고차 딜러들이 마주한 가장 심각한 위기 요소는 소비자들로부터 민심을 잃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여론은 기사 댓글에서도 확인 가능했다. 최근 동아일보에서 ‘대기업 진출-온라인 판매에 실적 급감… 車 딜러 투 잡 뛰기도’라는 제목으로 자동차 딜러들의 어려움을 조망하는 기사가 나오자 댓글에는 온통 날 선 반응들이 줄을 이었다. 누리꾼들로부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자업자득’이었다. 이외에도 ‘중고차 업계는 망하고 없어져도 속이 시원하다’, ‘그동안 나쁜 짓을 한 중고 판매인들이 너무 많아서 동정받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 진출을 격하게 반긴다’, ‘그동안 불안해서 중고차를 못 샀다. 대기업이 뛰어들면 훨씬 안전하게 중고차를 살 수 있다. 대기업이 중고차를 팔기 시작하면 나도 중고차 살 것이다’라는 등 적나라한 반응이 가득했다. 중고차 딜러들이 아프게 새겨야 할 말들이다.

중고차 딜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지난달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한 영화 ‘범죄도시3’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화에는 배우 고규필이 연기한 초롱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인천 지역 중고차 딜러인 초롱이는 손님에게 침수차를 3000만 원에 강매하려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형사 역할인 배우 마동석이 나타나 초롱이를 제지해 결국에는 ‘3000만 원’이 아니라 ‘3000원’에 판매하게 된다. 소비자를 속여 덤터기를 씌우는 것을 응징하는 속 시원한 장면이었다. 이러한 강매가 현실에서는 없을 법한 일이었다면 관객들이 어색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탓인지 해당 장면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널리 회자되며 한참 화제가 됐다.

중소기업 판매업은 2019년 이미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서 제외가 됐으며, 지난해 3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내 ‘생계형 적합 업종 심의위원회’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시 위원회는 “완성차 업계의 진출로 중고차 성능, 상태 등 제품의 신뢰성 확보, 소비자 선택의 폭 확대 등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대기업 진출을 통해 그동안 업계에 있던 병폐가 어느 정도 해소되길 기대하며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의 문호를 연 것이다.

이미 수입차 브랜드들은 상당수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운영 중인 데다가 향후 현대차, 기아, KG모빌리티 등까지 참전하면 중고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될 전망이다. 소규모 딜러들뿐 아니라 케이카, 오토벨, 헤이딜러 등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오토벨은 소비자와 딜러를 중개하는 플랫폼인 반면, 인증 중고차는 ‘자사 모델의 연식 5년 이하, 주행거리 10만 km 이내 상품’을 검수해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오토벨은 캐치프레이즈(선전 구호)로 ‘중고차 매물 청정지대’를 내세우고 있다. 오토벨이 초롱이를 걸러내는 마동석 같은 역할을 해준다면 소비자들이 청정지대로 몰려들지 않겠는가. 중고차 시장이 격변하는 시기에 현대글로비스가 어떤 전략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장해 나가는지 자동차 담당 기자로서 앞으로 더욱 애정을 지니고 지켜보도록 하겠다.

동아일보 한재희 기자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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