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결정은 무엇을 바꾸었나



그들의 결정은
무엇을 바꾸었나

역사를 바꾼 선택과 실행

어떤 결정은 운명을 바꾼다.
일상을 변화시키거나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역사에 기록되기도 한다.
기대는 있지만 결과는 확신할 수 없는 수많은 결정들.
그 선택의 실행이 가져온 매우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글. 편집실/참고자료. 『결정적 순간들』 『역사를 바꾼 50가지 전략』 『역사를 바꾼 50인의 지도자』


버락 오바마가 선택한 선거전략


버락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그가 2009년에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2007년 초, 그는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을 만나며 인터넷과 뉴미디어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TV를 선거의 지렛대로 삼은 존 F. 케네디처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거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당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지만 오바마는 그 잠재력을 믿었다. 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고, 젊은 유권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통상적으로 미국 18~29세 청년층의 대선 투표율은 40% 중후반대였지만, 2008년 대선에선 51.1%까지 상승했고, 그는 재선에도 성공했다. 결국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치에 무심했던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어온다는 그의 전략적 결정은 성공적이었다.

사랑과 성공 사이 운명적 선택


1947년 영국의 한 댄스파티장에서 만난 세레체 카마와 루스 윌리엄스는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집안과 국가의 반대에 직면하고 말았다. 세레체는 베추아날란드(보츠와나공화국의 옛이름)의 왕위 계승자이자 흑인이었고, 루스는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에선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법으로 금지돼 있었고, 세레체는 백인과 결혼하려면 왕위를 포기하는 동시에 고국을 떠나야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택하기로 결정, 그 결과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갖은 노력 끝에 다시 베추아날란드로 귀국하며, 세레체는 최초의 민주선거를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조국에서 민주국가의 첫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세레체는 베추아날란드를 부정부패 없는 나라로 이끌었고, 루스는 에이즈 퇴치와 인종차별 철폐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기로 한 두 사람의 결정이 이토록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고, 또 한 나라의 역사를 바꿀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결사항전과 타협의 기로에서 세계를 구한 결정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수상에 올라 독일 나치에 대항한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1940년 그가 총리가 됐을 때 나치군은 북부 프랑스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고, 영국은 히틀러와 결사항전을 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다. 여당 내에선 히틀러와 모종의 협약을 통해 전쟁을 피하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처칠은 싸워야 한다며 의회를 설득했고, BBC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국가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불어넣었다. 더불어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현실적인 전쟁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에 전쟁에서 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며 미국의 참전을 이끌었고, 1945년 마침내 승리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나치와 타협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처칠의 승리가 영국의 승리이자 전 세계의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결정된 신의 한 수


지난 2016년 이세돌과 구글 딥 마인드 AI 알파고가 대국을 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바둑계는 이세돌의 우세를 예상했다. 인공지능이 상당히 발전하기는 했지만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세돌을 넘어설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3번 연속 패했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제4국이 시작됐다. 여기서 그는 신의 한 수로 불린 78수로 알파고에 승리했다. 이에 대해 그는 “그 수 말곤 없는, 어쩔 수 없는 한 수였다”고 말했다. 2019년 바둑계를 은퇴한 후 한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왜 이 자리에 뒀냐’는 질문이다. 오랫동안 바둑을 둬오면서 대충 감각으로 두는 것인데 이유를 물으니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어떤 선택은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결정되기도 한다. 그동안의 경험과 감각, 직관과 통찰이 모두 합쳐진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통합적 결정은 인간이 AI를 이긴 마지막 기록으로 남았다.

2020.10.01

역사를 바꾼 선택과 실행

어떤 결정은 운명을 바꾼다.
일상을 변화시키거나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역사에 기록되기도 한다.
기대는 있지만 결과는 확신할 수 없는 수많은 결정들.
그 선택의 실행이 가져온 매우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글. 편집실/참고자료. 『결정적 순간들』 『역사를 바꾼 50가지 전략』 『역사를 바꾼 50인의 지도자』

 

버락 오바마가 선택한 선거전략

버락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그가 2009년에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2007년 초, 그는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을 만나며 인터넷과 뉴미디어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TV를 선거의 지렛대로 삼은 존 F. 케네디처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거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당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지만 오바마는 그 잠재력을 믿었다. 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고, 젊은 유권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통상적으로 미국 18~29세 청년층의 대선 투표율은 40% 중후반대였지만, 2008년 대선에선 51.1%까지 상승했고, 그는 재선에도 성공했다. 결국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치에 무심했던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어온다는 그의 전략적 결정은 성공적이었다.

사랑과 성공 사이 운명적 선택

1947년 영국의 한 댄스파티장에서 만난 세레체 카마와 루스 윌리엄스는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집안과 국가의 반대에 직면하고 말았다. 세레체는 베추아날란드(보츠와나공화국의 옛이름)의 왕위 계승자이자 흑인이었고, 루스는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에선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법으로 금지돼 있었고, 세레체는 백인과 결혼하려면 왕위를 포기하는 동시에 고국을 떠나야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택하기로 결정, 그 결과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갖은 노력 끝에 다시 베추아날란드로 귀국하며, 세레체는 최초의 민주선거를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조국에서 민주국가의 첫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세레체는 베추아날란드를 부정부패 없는 나라로 이끌었고, 루스는 에이즈 퇴치와 인종차별 철폐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기로 한 두 사람의 결정이 이토록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고, 또 한 나라의 역사를 바꿀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결사항전과 타협의 기로에서 세계를 구한 결정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수상에 올라 독일 나치에 대항한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1940년 그가 총리가 됐을 때 나치군은 북부 프랑스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고, 영국은 히틀러와 결사항전을 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다. 여당 내에선 히틀러와 모종의 협약을 통해 전쟁을 피하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처칠은 싸워야 한다며 의회를 설득했고, BBC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국가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불어넣었다. 더불어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현실적인 전쟁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에 전쟁에서 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며 미국의 참전을 이끌었고, 1945년 마침내 승리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나치와 타협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처칠의 승리가 영국의 승리이자 전 세계의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결정된 신의 한 수

지난 2016년 이세돌과 구글 딥 마인드 AI 알파고가 대국을 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바둑계는 이세돌의 우세를 예상했다. 인공지능이 상당히 발전하기는 했지만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세돌을 넘어설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3번 연속 패했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제4국이 시작됐다. 여기서 그는 신의 한 수로 불린 78수로 알파고에 승리했다. 이에 대해 그는 “그 수 말곤 없는, 어쩔 수 없는 한 수였다”고 말했다. 2019년 바둑계를 은퇴한 후 한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왜 이 자리에 뒀냐’는 질문이다. 오랫동안 바둑을 둬오면서 대충 감각으로 두는 것인데 이유를 물으니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어떤 선택은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결정되기도 한다. 그동안의 경험과 감각, 직관과 통찰이 모두 합쳐진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통합적 결정은 인간이 AI를 이긴 마지막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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