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바둑생활



슬기로운 바둑생활

세계바둑 1위 신진서 9단

신진서 전성시대가 열렸다. 만 20세에 한국바둑랭킹 1위,
세계바둑랭킹(Go Ratings) 1위에 오른 그를 중국에선 신공지능(申工智能)이라 부를 정도다.
올해 2월엔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세계대회를 제패했음에도
“우승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신진서 9단. 부친이 지어준 참 진(眞)에 슬기 서(諝)란 이름처럼
슬기롭게 다음 수를 고민하는 그를 글로비스인들이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 이 칼럼 촬영은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 시점에서 진행된 것으로,
촬영컷을 찍는 순간 외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위생수칙을 지켰습니다.

글. 편집실 / 사진. 김정호 / 인터뷰. 해외사업개발팀 정용철 책임매니저, 최재용 매니저



부산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만 4세 때 바둑돌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바둑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는지, 이후 바둑기사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제가 어릴 때 어린이집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했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바둑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거죠.그런데 전 바둑이 꽤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당시 학원에서 바둑을 배우던 형들이랑 바둑시합도 했는데 그땐 대국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돌을 하나씩 잡아나가는 데 재미를 느꼈고요.

그런데 바둑을 배운 지 1년여 만에 초등학교 저학년부대회를 제패하니까 부모님께서는 저의 재능을 확신하셨죠. 저도 바둑 두는 게 즐거워서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엔 앞으로 바둑기사가 되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2011년 9월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고, 이듬해 7월에 열린 제1회 영재 입단대회에서 1위를 하면서 만 12세에 프로가 됐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바둑기사의 길을 걸을 것 같아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2만 판을 훌쩍 뛰어넘는 인터넷 대국을 치르신 걸로 아는데요. 기사님의 성장에 인터넷 대국은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만 9세 때부터 인터넷 대국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적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건데 어릴 땐 하루 10판이 기본이었죠. 그때는 지금과 달리 유명한 기사들도 대국 신청을 많이 받아줘서 인터넷은 저에게 또 하나의 배움터가 됐어요. 가상의 ID를 쓰는 익명의 공간이었지만, 각자 바둑을 두는 스타일이 있어서 몇판만 두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고요. 입단 1년 전 부터는 중국의 커제 9단과 인터넷에서 자주 맞붙었습니다. 당시 커제 9단은 프로기사였기에 처음엔 제가 밀렸지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후론 대국 신청을 잘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하하.

그동안 수많은 승부를 겪으셨는데 가장 큰 기쁨을 준 경기와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아쉬웠던 경기부터 말하자면, 2016년에 열렸던 제21회 LG배 4강전입니다. 당시 중국의 당이페이와 만났는데 제가 우세를 잡고도 실수를 범해서 패했거든요. 솔직히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었고 중국랭킹도 33위인 당이페이를 당연히 이길 거라 자만했어요. 뼈아픈 패배였지만 그 이후 한 수 한 수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됐으니 제 자신을 성장시킨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기쁨을 준 경기는 올해 2월에 열린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이에요. 생애 처음으로 세계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다는 기쁨이 컸어요. 물론 동시에 절대 자만해선 안 된다는 다짐도 했죠. 우승 다음날부터 바로 인터넷 대국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우승 이후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인터넷에 떠도는 신진서 기사님의 ‘1일 생활계획표’엔 ‘인터넷 바둑에서 패하면 이길 때까지 둔다’ 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어린시절엔 바둑에서 질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는 기사도 보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시나요?

어릴 때부터 패배를 못 견뎌했어요. 인터넷 대국에서 지는 날엔 밤을 새서라도 이길 때까지 대국을 했을 정도로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바둑에서 질 때마다 울었고, 그러다 한 3~4년 전부터 경험이 쌓이고 랭킹이 높아지면서부터는 좀 차분해진 것 같아요. 지는건 정말 싫지만 ‘다음 경기를 생각하자’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됐죠.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창호 선배기사님을 보면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바둑을 두는 것도 스타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신진서 기사님만의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지는 걸 정말 못 참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전투적으로 바둑을 두는 편입니다. 덕분에 저승사자란 별명도 생겼지만 아직 저의 바둑스타일이 확실히 갖춰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공격적인 성향을 좀 더 균형 있게 다듬어야 한다는 필요는 느끼고 있죠. 그래서 인터넷 대국을 할 때 일부러 저와 반대 성향을 가진 기사를 택해서 시합을 하기도 해요.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공부하기 위해서요.

평범한 청년으로서 바둑을 하지 않을 때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바둑 이외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먼저 저의 생활패턴을 말씀드리면 보통 새벽 1시쯤 잠이 들어 오전 10시에 일어납니다. 잠이 좀 많은 편이에요. 대국하는 꿈도 자주 꾸고요. 아침을 먹고 한국기원에 나가 오후 5~6시까지 바둑공부를 하고요. 저녁을 먹고 집에서 잠시 쉬다가 또 바둑공부를 합니다. 저의 인생에서 바둑과 바둑 외 일상의 비율을 따져보면 9:1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나머지 1은 잠을 자는 것과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 정도라 할까요?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TV를 보는 정도죠.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어요. 원래 매일 노는 것 보다는 가끔씩 노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예전엔 세계 1위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지금은 세계 1위를 지키면서 한걸음 더 성장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하니까요. 몰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바둑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신진서 천하가 도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요즘, 신진서 기사님이 생각하는 바둑의 매력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바둑은 참 오묘하고 특별해요. 스포츠지만 예술에 가깝죠. 어릴 땐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 등 선배기사들처럼 최고의 실력을 갖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목표의 끝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바둑이란 세계가 무한하다고 느껴요. 끝을 알 수 없는 그 세계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또 응용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그만큼 어렵고 힘들지만, 또 그만큼 무한한 재미를 가진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신진서 9단은


현재 기준, 한국은 물론 세계랭킹에서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재 바둑기사다. 그의 어린 시절 기풍은 이세돌 9단을 닮았다는 평이지만, 현재는 인공지능 추천 수와 똑같이 두는 기사라고 얘기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바둑의 기대주로서 주목 받았으며, 역시나 그 기대만큼의 활약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그의 기록인 통산승률 74.8%는 현재 시점상 한국기원 통산승률 역대 1위의 기록이다.

2020.09.01

세계바둑 1위 신진서 9단

신진서 전성시대가 열렸다. 만 20세에 한국바둑랭킹 1위,
세계바둑랭킹(Go Ratings) 1위에 오른 그를 중국에선 신공지능(申工智能)이라 부를 정도다.
올해 2월엔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세계대회를 제패했음에도
“우승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신진서 9단. 부친이 지어준 참 진(眞)에 슬기 서(諝)란 이름처럼
슬기롭게 다음 수를 고민하는 그를 글로비스인들이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 이 칼럼 촬영은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 시점에서 진행된 것으로,
촬영컷을 찍는 순간 외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위생수칙을 지켰습니다.

글. 편집실 / 사진. 김정호 / 인터뷰. 해외사업개발팀 정용철 책임매니저, 최재용 매니저

 

 

부산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만 4세 때 바둑돌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바둑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는지, 이후 바둑기사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제가 어릴 때 어린이집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했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바둑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거죠.그런데 전 바둑이 꽤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당시 학원에서 바둑을 배우던 형들이랑 바둑시합도 했는데 그땐 대국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돌을 하나씩 잡아나가는 데 재미를 느꼈고요.

그런데 바둑을 배운 지 1년여 만에 초등학교 저학년부대회를 제패하니까 부모님께서는 저의 재능을 확신하셨죠. 저도 바둑 두는 게 즐거워서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엔 앞으로 바둑기사가 되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2011년 9월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고, 이듬해 7월에 열린 제1회 영재 입단대회에서 1위를 하면서 만 12세에 프로가 됐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바둑기사의 길을 걸을 것 같아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2만 판을 훌쩍 뛰어넘는 인터넷 대국을 치르신 걸로 아는데요. 기사님의 성장에 인터넷 대국은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만 9세 때부터 인터넷 대국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적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건데 어릴 땐 하루 10판이 기본이었죠. 그때는 지금과 달리 유명한 기사들도 대국 신청을 많이 받아줘서 인터넷은 저에게 또 하나의 배움터가 됐어요. 가상의 ID를 쓰는 익명의 공간이었지만, 각자 바둑을 두는 스타일이 있어서 몇판만 두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고요. 입단 1년 전 부터는 중국의 커제 9단과 인터넷에서 자주 맞붙었습니다. 당시 커제 9단은 프로기사였기에 처음엔 제가 밀렸지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후론 대국 신청을 잘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하하.

그동안 수많은 승부를 겪으셨는데 가장 큰 기쁨을 준 경기와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아쉬웠던 경기부터 말하자면, 2016년에 열렸던 제21회 LG배 4강전입니다. 당시 중국의 당이페이와 만났는데 제가 우세를 잡고도 실수를 범해서 패했거든요. 솔직히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었고 중국랭킹도 33위인 당이페이를 당연히 이길 거라 자만했어요. 뼈아픈 패배였지만 그 이후 한 수 한 수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됐으니 제 자신을 성장시킨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기쁨을 준 경기는 올해 2월에 열린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이에요. 생애 처음으로 세계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다는 기쁨이 컸어요. 물론 동시에 절대 자만해선 안 된다는 다짐도 했죠. 우승 다음날부터 바로 인터넷 대국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우승 이후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인터넷에 떠도는 신진서 기사님의 ‘1일 생활계획표’엔 ‘인터넷 바둑에서 패하면 이길 때까지 둔다’ 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어린시절엔 바둑에서 질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는 기사도 보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시나요?

어릴 때부터 패배를 못 견뎌했어요. 인터넷 대국에서 지는 날엔 밤을 새서라도 이길 때까지 대국을 했을 정도로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바둑에서 질 때마다 울었고, 그러다 한 3~4년 전부터 경험이 쌓이고 랭킹이 높아지면서부터는 좀 차분해진 것 같아요. 지는건 정말 싫지만 ‘다음 경기를 생각하자’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됐죠.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창호 선배기사님을 보면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바둑을 두는 것도 스타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신진서 기사님만의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지는 걸 정말 못 참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전투적으로 바둑을 두는 편입니다. 덕분에 저승사자란 별명도 생겼지만 아직 저의 바둑스타일이 확실히 갖춰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공격적인 성향을 좀 더 균형 있게 다듬어야 한다는 필요는 느끼고 있죠. 그래서 인터넷 대국을 할 때 일부러 저와 반대 성향을 가진 기사를 택해서 시합을 하기도 해요.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공부하기 위해서요.

평범한 청년으로서 바둑을 하지 않을 때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바둑 이외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먼저 저의 생활패턴을 말씀드리면 보통 새벽 1시쯤 잠이 들어 오전 10시에 일어납니다. 잠이 좀 많은 편이에요. 대국하는 꿈도 자주 꾸고요. 아침을 먹고 한국기원에 나가 오후 5~6시까지 바둑공부를 하고요. 저녁을 먹고 집에서 잠시 쉬다가 또 바둑공부를 합니다. 저의 인생에서 바둑과 바둑 외 일상의 비율을 따져보면 9:1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나머지 1은 잠을 자는 것과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 정도라 할까요?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TV를 보는 정도죠.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어요. 원래 매일 노는 것 보다는 가끔씩 노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예전엔 세계 1위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지금은 세계 1위를 지키면서 한걸음 더 성장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하니까요. 몰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바둑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신진서 천하가 도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요즘, 신진서 기사님이 생각하는 바둑의 매력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바둑은 참 오묘하고 특별해요. 스포츠지만 예술에 가깝죠. 어릴 땐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 등 선배기사들처럼 최고의 실력을 갖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목표의 끝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바둑이란 세계가 무한하다고 느껴요. 끝을 알 수 없는 그 세계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또 응용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그만큼 어렵고 힘들지만, 또 그만큼 무한한 재미를 가진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신진서 9단은

현재 기준, 한국은 물론 세계랭킹에서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재 바둑기사다. 그의 어린 시절 기풍은 이세돌 9단을 닮았다는 평이지만, 현재는 인공지능 추천 수와 똑같이 두는 기사라고 얘기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바둑의 기대주로서 주목 받았으며, 역시나 그 기대만큼의 활약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그의 기록인 통산승률 74.8%는 현재 시점상 한국기원 통산승률 역대 1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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