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급부상에 공급망으로 견제구 던진 미국…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BUILD YOUR DREAMS’

당신의 꿈을 키워라!

광고 문구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이 영어 슬로건을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목격했다. 지난 11월 외국 수입차 브랜드 신형 모델 출시 취재차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 승용차 뒤편에 새겨진 이 레터링이 눈에 확 띄었다. 바로 중국 전기차업체 1위 ‘BYD'(比亞迪·비야디)를 설명하는 상징적 로고인 셈이다. 으레 승용차 후면 가운데 자리하는 크레스트가 BYD 차량에는 없었다. ‘Made in China’ 이미지를 불식시킨 것이다. BYD 의미는 개인적 호기심에 찾아 본 끝에 1995년 비야디를 창립한 ‘비야디 왕촨푸'(比亞迪 王传福)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배터리 사업에 성공한 자금을 바탕으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BYD는 현재 중국 1위 전기차 생산 업체로 우뚝 섰다. BYD가 만든 전기차는 모두 친환경을 의미하는 ‘연두색’ 번호판을 달고 있다. 우리 번호판의 옅은 파란색과 같은 의미다. 상하이에선 연두색 번호판을 단 차량은 BYD 승용차 뿐만이 아니었다.

상하이 도심과 외곽을 누비는 수많은 택시는 모두 연두색 번호판을 달았다. 심지어 교통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 대중 교통이 이미 전동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달리는 나라가 중국’이란 말이 그야말로 실감이 났다.
BYD가 자동차 상징 로고 대신 ‘BUILD YOUR DREAMS’를 차량 뒤편 중앙에 부착한 것은 분명 노림수가 있다. 창업주 이름 앞글자 이니셜을 부각하는 게 아닌 세계 수출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BYD 대신 ‘멋진 차를 갖고 당신의 꿈도 키우라’고 자극하며 중국 특유의 ‘품질 낮은 저가 이미지’ 색채를 줄이려는 것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 일환이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선 BYD가 중국 차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지만 아프리카, 중동, 남미, 동유럽에선 가성비 뛰어난 ‘꿈의 전기차’로 인식시켜줄 수도 있다.
중국 전기차의 엄청난 도약은 자동차 업계에선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올해 중국 전기차 판매량 순위 모델을 보면 테슬라 모델Y를 제외하고 2∼4위는 모두 중국 업체가 싹쓸이했다. 2는 BYD의 보급형 소형 해치백 시걸(Seagull), 3위∼4위는 BYD의 저가형 전기차 ‘위안 플러스'(Yuan Plus)와 ‘돌핀'(Dolphin)이다. 5위는 광저우자동차그룹(GAC)이 생산하는 아이온(Aion) Y 모델이다.
테슬라가 한 모델에서, 그것도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탑재한 모델Y로 간신히 선두를 유지할 뿐 이미 중국 완성차 업체가 국내 전기차 시장을 장악한 셈이다. BYD가 만드는 개별 모델이 테슬라 모델Y에 역전을 거둘 날도 사실상 시간문제다.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도 중국의 기세등등한 전기차 성장세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들고나온 것이 ‘자유진영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다.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중국의 기술력과 제품 수출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가장 공들이는 분야는 반도체,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이차전지), 반도체·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핵심광물 등 크게 3가지다. 전기차는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광물 등 이 3가지 요소가 모두 아우르는 미래 핵심 산업인 셈이다.
전기차는 미래 자동차 산업 패권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핵심 광물 확보와도 맞물려 미·중 간 사활을 건 ‘쟁탈전’의 핵심이기도 하다. 글로벌데이터(Global Data)에 따르면 전기차가 2016년 전체 경자동차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0.7%밖에 안됐지만 매년 급격히 상승 중이다. 2019년 2.3%에서 2020년 3.0%까지 올랐다. 2025년에는 1천160만대를 생산하며 11.6% 비중을 차지하고 2031년에는 26%(2천800만대), 2036년에는 40%(4천5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2030년까지 현대차그룹과 테슬라, 폭스바겐, GM, 르노-닛산 등 주요 5개 완성차 기업이 판매할 전기차는 8천900만대로 전체 판매량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전기차 흐름에 타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전망치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용되는 ‘우드 매거진'(Wood Magazine)에 따르면 전기차는 2050년까지 전체 판매 차량의 56%를 차지하는 데 더해 지배적 운송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수요는 미흡한 인프라 충전, 오랜 충전 시간에 따른 불편으로 다소 주춤하기는 했다. 하지만 선진국 중심의 글로벌 ‘탄소 중립’ 정책 속에 소음과 냄새 없는 안락한 승차감, 가솔린 대비 더 효율적인 연비, 친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로 가솔린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변화이다. 특히 세계 주요 국가들이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자동차 관련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 속에서 승용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는 자동차 업계가 반드시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금 과도기적으로 하이브리드차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기차가 대세가 될 날이 올 것이다.
일찌감치 하이브리드가 보편화한 미국과 서유럽, 일본에서 먼저 전면적인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을 제외하고 전기차 인프라 시설이 가장 빠르게 확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생산 비중을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것이다.
관건은 우리 자동차 업계와 정부가 미·중 간 전기차 패권 경쟁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 대비하고 있는지 여부다. 중국은 전기차 기술력과 배터리 핵심광물을 앞세워 전기차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글로벌 배터리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중국을 기어코 배제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펼칠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분야에선 나름 자신감이 있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대로 가다가는 비관적 현실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반도체는 미국이 핵심 원천 기술 대부분을 갖고 있고 미래 반도체의 핵심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 선진국인 한국, 일본은 미국 동맹이고 대만도 미국 편인 점은 다행이지만 최대 불안 요소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압도적 기술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배터리 기술력에서 앞서간 중국과 경제안보 동맹을 맺은 미국 사이에서 과연 어떤 전략을 짜야 할까?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우리의 현재 전략이 예상대로 적중할지도 장담하긴 어렵다. 다만, 어려운 문제에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대응 방안을 모색할 시간은 있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먼저 국제 전기차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제 국제 시대는 ‘경제안보’시대이다. 안보가 경제까지 리드하고, 경제는 각 국가의 안보에 종속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자유무역협정(FTA)의 종말’과 다름없다.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 안보를 위해 경제와 통상 현안에 깊숙이 관여해 통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 역시 자국의 국익 확보가 최우선 과제이다. 동맹이라고 해서 또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라고 해서 한국을 배려할 여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

중국의 경우 전기차 기술력이나 수출 전략을 등한시하거나 눈을 감고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중국산 LFP 배터리 확산을 들 수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가격은 좀 더 나가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은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밀고 나가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중국산은 안전성도 낮은 값싼 배터리인 만큼 조금 비싸더라도 안정성 높고 에너지 효율이 좋은 한국산 배터리가 결국 배터리 시장을 차지할 것이란 낙관론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실은 딴 판이었다. 중국의 제조 원가가 저렴한 LFP 기술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안정성까지 높여가면서 지금은 재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에서도 LFP를 사용하는 전기차를 늘고 있다. 테슬라는 LFP를 탑재한 배터리로 가격 인하 경쟁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런 국제 흐름에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업계도 LFP 기술력 제고에 노력을 하고 있다. 뒤늦었지만 한쪽 분야에만 베팅하지 않고 국제 동향을 살피면서 만약에 대비한 선택지도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이미 비슷한 시행착오도 겪었다. 나중에 빠른 전환으로 전기차 흐름에 올라타긴 했지만, 전기차보다 한 발 더 앞선 수소차를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 역시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수출 전략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수소나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뒤늦게나마 국제 흐름에 맞게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로 신속히 전환했고 이에 힘입어 현대차·기아는 올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써냈다.
미국과는 경제안보 동맹으로 진화한 만큼 그리고 가치동맹으로서 긴밀한 협력과 공조는 필수이다. 다만 국익 차원에서 미국과 경제, 구체적으로 공급망 관련 협상에서 우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설득할 부분은 설득해야 한다. 미국이 추진 중인 중국 배제 기조에 전적으로 편승할 경우 나중에 중국과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입 비중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척지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와 이차전지와 관련해 우리나라, 일본과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완전히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소재로 쓰이는 광물도 중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만큼 우리 산업 실정에 맞는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입장을 충분히 설명,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자동차 기업 역시 세계 전기차 기술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실리를 챙길 수 있게끔 다른 외국 완성체 업체와도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 혼다가 미국 GM과 전기차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폭스바겐은 포드와, 그리고 미쓰비시는 르노와 공동으로 전기차, 배터리, 관련 부품 개발을 이미 하고 있다.

김태종 특파원,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공동성명 “지속적 진전 토대 마련”, 연합뉴스, 2023-11-17, https://www.yna.co.kr/view/AKR20231117076500091

미국은 이러한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에 한국이 적극 편입되길 바라고 있다. 가치에 기반을 둔 공급망 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미국은 중국과도 국익에 부합한다면 일부 영역에서 반도체·배터리 경쟁에서 타협할 수 있다. 그러면 글로벌 공급망은 언제든 재조정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은 중국과 직거래도 할 수 있다. 두 강대국이 우리를 소외시키지 못하도록 우리 기술력을 더욱 키워야 하는 이유다. 배터리 뿐 아니라 반도체 기술력을 지속 키우고 핵심광물의 공급처를 다양하게 확보해야 한다. 광물도 풍부하고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나라로 꼽히는 인도, 베트남, 멕시코와의 관계도 잘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요소수 부족 사태에서 보듯 특정국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전기차 시대를 위해 배터리는 물론 배터리 재활용 기술, 수소차 연구도 게을리하면 안된다. 지금의 전기차 충전의 전력 원천이 거의 모두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는 터라 실질적으로 친환경, 신재생 전기는 아닌 탓이다.

연합뉴스 한상용 차장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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