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문화에 대한 단상

특파원 생활을 할 때나 해외에 체류할 때를 되짚어보면서 차(車)의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제 필수 소비재가 된 차와 관련된 문화는 그 나라의 생활양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3만5000달러 안팎에 안착하면서 누가 봐도 선진국으로 올라선 한국도 차 문화가 많이 선진화됐다고 느낀다. 도로에 클랙슨 소리가 줄어든 점이나 횡단보도 라인을 어기는 차량이 거의 안 보이다는 점, 길을 건너는 보행자에게 먼저 양보하는 차량이 늘었다는 점 등 때문이다. 기자의 어린시절과 청년때는 쉽게 보지 못했던 문화다.

개인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간 차 문화 차이의 시작을 민주주의와 차량 보급에서 찾았다. 민주주의가 정착한 이후에 차가 보편화됐는 여부와 구분해 이해하는 식이다.

민주주의 정착 이전에 차가 보급된 경우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던 자동차는 권력자의 소유물이었다. 이 경우 차가 사람보다 우선시된다. 도보인들이 차를 피해가는 게 디폴트 값으로 자리잡는다.

민주주의가 먼저 생기고 차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경우에는 사람이 우선된다. 거의 모든 경우 자동차가 사람을 피해 다닌다. 미국과 유럽 등이 그렇다.

유럽 도로의 수많은 로터리 시스템의 핵심은 양보다. 먼저 진입한 차가 먼저 도는 원칙으로 로터리는 유지된다. 사거리 신호등의 경우 차가 밀려 꼬리가 물리거나 주황색 점멸등일 경우 기다린 사람이 먼저 간다는 원칙이 불분명해진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자동차의 보편화보다 더 늦게 장착된 사회에선 로터리시스템은 불능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로터리가 통행량이 적은 시골에만 종종 있는 이유다.

로터리를 쓰지 않는 미국의 경우 차로가 감소해 병목구간이 생기면 합쳐지는 구간 위에 신호등을 둔다. 신호등은 3초나 5초 단위로 한 차선마다 파란색과 빨간색을 오간다. 차가 진입할 순서를 정해주는 것이다.

이런 신호 없는 경우 병목구간의 ‘한대씩’ 원칙은 순전히 선의에 기대고 있다. 이기적인 운전자가 단 한 명만 나와도 시스템은 쉬 무너진다.

몇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입국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모나코, 프랑스 니스와 아비뇽, 리옹 등을 거쳐 파리로 운전 여행을 했다. 총 달린 거리는 2700km였다. 당시 아우토반도 달려봤다. 어떻게 공도에서 속도 무제한이 가능한지 궁금했는데, 비결은 도로 시스템과 교통문화, 기술 등이 합쳐진 결과였다.

도로의 1차로는 철저히 비워 놓고 추월할 때만 쓴다는 원칙이 첫번째였다. ‘상대방의 오른쪽으로 추월하지 않는다’와 ‘트럭과 버스는 철저히 마지막 차로만 달린다’는 두 개의 규칙만 정해도 안전 운전의 8할은 달성됐다.

독일 아우토반에서 이 원칙을 깨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의 고속도로에선 오른쪽 추월이 예사다. 막히면 비는 차로를 찾고 그게 우측 차로여도 무상관이다. 버스나 트럭들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왼쪽으로 차선을 넘나든다. 이런 돌발 상황이 많은 도로에선 속도라도 제한해야 사고가 덜난다.

도로의 품질 또한 우수했다. 한국의 고속도로처럼 포트홀의 흔적이 거의 없다. 고속 운전에선 조그만 요철만 있어도 위험할 수 있는데 아우토반의 경우 요철이 거의 없도록 도로를 유지하고 있다.

요철이 없다는 건 트럭들이 과적을 하지 않거나 도로가 파여도 금세 메꾼다는 의미다. 파인 부분이 생기면 차로 전체를 다시 포장한다.

커브길이 나오면 자동차경주의 트랙처럼 경사로를 눈에 띄게 만든다. 차가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다. 공사 구간이 적지 않은 관계로 제한속도 표지판이 전광판으로 곳곳에 설치돼 있다. 같은 구간이라도 제한속도가 바뀐다.

유럽에서 운전하기 전 팁을 알기 위해 사전에 검색을 해봤는데 “제한속도 표지판을 반드시 지키라”고 했다. 특히 속도 무제한이 끝나고 제한속도가 시속 80km로 떨어지면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운전해보니 철저히 느낄 수 있었다. 제한속도가 시속 80km로 떨어지면 1km 앞에 공사구간이 반드시 나왔다.

한국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도심 도로의 제한속도 기준이 엄격해졌다. 시내는 대로는 시속 50km이고, 골목길은 모두 30km로 바뀌었다. 추후 어린이보호구역은 시속 20km로 제한속도를 더 낮춘다고 한다.

하지만 이 규정들은 속도를 범죄로 규정한 철학에 근본을 둔다. 미국의 속도 제한을 보면 주택가가 시속 30마일 국도는 45마일, 고속도로는 60마일이다. 인구가 적은 주는 속도가 더 올라간다. 유타주는 85마일도 있었다. 85마일이면 시속 137km다.

속도를 제한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정해진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실선에서 차로 변경을 하고, 일방통행에도 역주행을 하며, 차선을 바꾸거나 좌우회전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사고는 이런 데서 발생한다.

‘민식’ 어린이는 스쿨존에서 차에 치어 사망했다. 이는 운전자의 과속이나 전방 부주의 때문 만은 아니다. 운전자는 시속 23km로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도에서도 도로에 튀어나온 어린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스쿨존에, 대로에, 골목길에 수 많은 차들이 불법으로 세워져 있다.

민식이법이 온전해지려면 속도와 감시카메라를 대동할 게 아니라 불법주차에 대해 높은 벌금을 강하게 매기는 등의 규제를 먼저 했어야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불법주차 차주에 책임을 묻고, 차고지가 없다면 차를 살 수 없게 하는 내용도 담겨야 한다. 차는 달릴 때보다 서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한국경제신문 김재후 기자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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