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택배, IT 기업까지…
풀필먼트에 팔 걷어붙인 기업들

대기업에 다니는 A 씨는 지난해 연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 갑작스럽게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부랴부랴 출장을 준비하다가 출국 전날 스마트폰 케이스가 부서졌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열어 당일배송 서비스를 이용해 스마트폰 케이스를 주문했다. 다음 날 아침 예정대로 집 앞에 도착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들고 그는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물류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일상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진일보한 배경에는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다.

풀필먼트는 판매자 대신 주문에 맞춰 제품을 선택하고 포장한 뒤 배송까지 해주는 물류 일괄대행서비스를 뜻한다. 물류 업체가 제품 선택부터 포장, 배송까지 한 번에 담당하는 방식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류창고를 비롯한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각 기업이 풀필먼트 서비스를 앞 다퉈 확충하면서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다양한 상품을 집에서 빠르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풀필먼트를 제공하는 기업 입장에선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다양한 카테고리의 수백만 건 상품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면서, 주문에 맞춰 선별·포장하고 빠르게 배송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의 핵심인 풀필먼트 물류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도 고도의 물류 운영 능력이 필요하다. 물류센터 여기저기 흩어진 재고에서 소비자가 주문한 상품을 빠르게 찾아 피킹하고 다시 포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풀필먼트 물류센터가 제품을 새로 제조하는 수준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유통의 제조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풀필먼트 서비스의 최강자로 꼽히는 기업은 미국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업이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풀필먼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물류산업의 무게중심이 풀필먼트로 이동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확충하는 기업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선도하는 국내 주요 업체의 현황을 조사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쿠팡이다. 2014년 익일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상품 보관과 포장부터 출하, 배송까지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쿠팡은 직매입을 통해 재고를 미리 물류센터에 보관하고 주문상품은 자체 배송인력이 배송하는 방식으로 배송 시간을 단축했다.

쿠팡의 로켓 배송 하루 출고량은 300만 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많은 주문량을 처리하기 위해 쿠팡은 자체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했다. 물건을 유형별로 구분해서 창고에 쌓아두는 대신, 물건을 가장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쿠팡은 2020년 연말 기준 전국 30개 도시에 10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확보했다. 총면적은 70만2,580평에 달한다. 대한민국 인구의 70%가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약 11.3㎞ 이내에 살고 있다. 나아가 쿠팡은 전국 각지에 혁신 물류 인프라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전라북도 완주, 경상남도 창원, 김해, 충청북도 청주, 부산광역시 등에 1조5,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신규 물류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수도권에서 7개의 상온 풀필먼트센터와 1개의 저온 풀필먼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지난해 연말 경기도 용인에서 ‘콜드체인 풀필먼트 센터’를 본격 가동했다. ‘콜드체인 풀필먼트 센터’는 식품 등 냉장·냉동 등 저온 관리가 필요한 제품군을 대상으로 보관, 재고관리, 포장, 출고, 배송 등 물류 전 과정을 통합 수행하는 첨단 물류 인프라다.

CJ대한통운이 제공하는 풀필먼트 시스템의 강점은 콜드체인이다. 상품의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온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한다. 물류센터 곳곳에 설치된 센서들이 온도와 습도를 365일 측정하고 데이터화해 관리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첨단기술이다.

‘이플렉스(eFLEXs)’로 불리는 통합물류관리시스템도 풀필먼트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플렉스는 온라인 쇼핑몰사업에서 물류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통합 관리한다. 지그재그,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고객사의 주문을 취합하고 택배를 출고하기까지 과정을 이플렉스가 자동으로 수행한다.

CJ대한통운은 이플렉스의 기능을 고도화해 최근 다음날 상품이 얼마나 주문될지 주문량을 예측해 고객사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이 시스템의 평균 예측 정확도는 88%에 이른다.

CJ대한통운은 2023년까지 2조5,000억 원을 투자해 냉장·냉동·상온 풀필먼트센터를 추가로 구축할 예정이다.

최근엔 국내 최대 IT 기업 중 하나인 네이버가 풀필먼트 사업에 진출하면서 화제가 됐다. 다만 네이버의 풀필먼트는 쿠팡처럼 직접 물류창고를 보유하는 방식은 아니다. 대신 네이버는 풀필먼트 사업자와 제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3,0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하며 우군을 확보했다. 더불어 이마트, 신세계와 각각 1,500억 원, 1천억 원의 지분을 교환하면서 동맹을 맺었다. 이에 따라 신세계그룹이 보유한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와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등 7,300여 개 오프라인 거점을 활용해, 전국 단위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물류 스타트업인 위킵, 파스토, 딜리셔스, 두손컴퍼니, 아워박스, 브랜디, 아비드이앤에프 등에도 투자를 단행했다. 패션물류, 콜드체인 등 각 사가 가진 강점을 극대화해 차별화된 풀필먼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물류 동맹 덕분에 네이버는 전국 단위 당일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 브랜드스토어에서 제공 중인 익일 배송 서비스를 46만 스마트스토어까지 확대한다. 생필품, 신선식품 등 빠른 배송에 대한 사용자 요구가 많은 상품군은 당일·새벽배송도 가능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나아가 곤지암·군포·용인 풀필먼트 센터에 이어 추가로 현재의 10배 규모인 20만 평 규모 이상의 풀필먼트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확충하는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한진은 현재 남서울, 동서울, 백암 허브터미널을 풀필먼트센터를 운영 중이다. 추후 메가허브터미널 구축을 계기로 풀필먼트 사업 확장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연면적 14만9110m²의 초대형 거점 물류센터인 대전 스마트 메가 허브 터미널을 짓고 있다. 이 물류센터에서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지난해 4월 경기도 이천에 첫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했다. 진천 메가허브터미널에 조성한 자동화 풀필먼트 센터의 규모는 약 1만5000평에 달한다. 풀필먼트센터가 완공되면 롯데쇼핑 등 그룹 계열사 중심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으로, 고객사를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삼성SDS는 지난 1월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단순 물류 서비스를 넘어 최종 고객에게까지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필먼트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앙일보 문희철 기자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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