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비즈니스사, 얼마나 오래 풀 수 있나요

세계 자동차 산업 무게 중심이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에서 엔진 대신 전기로 돌리는 모터를 쓰는 전기자동차(EV)로 이동 중이다. 글로벌 대세로 굳은 듯한 전동화 바람 속에 가솔린 차량과 전기차의 경쟁은 결국 EV의 승리로 끝나는 게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근데 자동차를 움직일 에너지원을 두고 벌이는 휘발유와 전기 간 대결이 오늘날의 일인 것 같지만, 사실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경쟁은 아주 오랜 전에 시작됐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강력한 유동성 에너지인 석유의 탄생으로부터 비롯된다. 자동차·항공기 같은 새로운 수송 수단의 탄생은 석유 없인 요원했을 것이다. 여기서 유동성이 뛰어나다는 건 마치 혈관을 통해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듯, 송유관·주유소 등을 통해 산업 곳곳에 전달할 수 있는 특성을 석유가 지녔다는 의미다.

출처: 포르쉐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석유 못지않게 유동성을 보유한 에너지원이 있다. 바로 전기다. 그러다보니 전기를 이용한 자동차의 개발 역시 내연기관차 못지않게 진행됐다.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가 있기 무려 100여 년 전인 1898년, 전기차를 개발해 가솔린과 경쟁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페르디난트 포르쉐다. 이후 독일 슈퍼카 브랜드인 포르쉐가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인 ‘타이칸’을 선보인 건 2019년이다.

오스트리아 황실에 자동차를 공급하던 회사에 취직한 엔지니어였던 포르셰는 전기차의 가장 큰 문제가 무거운 배터리임을 주목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1901년 세계 최초로 벤츠의 가솔린 기관을 발전기로 채택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든다.

하지만 포르쉐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그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개발은 중단된다. 포르셰는 군대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운전병으로 일했고, 나중에 황태자가 암살되는 사라예보 사건이 도화선이 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처럼 포르셰가 역사의 현장에 잡혀 있는 동안 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변화가 미국서 일어난다. 에디슨의 전기회사에서 일하던 헨리 포드가 1903년 독립해 자동사 회사를 설립한다. 헨리 포드는 5년 뒤 ‘모델T’ 자동차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획기적인 대량 생산시스템인 ‘포드 시스템’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둔다. 그 결과 고가의 가솔린 차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지며 일부 상류층만 타던 자동차를 일반인들도 살 수 있게 됐다.

포드의 등장 이후 가솔린 자동차의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면서 한때 주류가 되는듯하던 전기차는 자취를 감춘다.

포르셰가 군 복무를 마치고 1906년 현장에 복귀했을 때는 대세는 이미 가솔린 자동차로 기울고 있었다. 이때 벤츠가 포르셰를 불러 전기차를 포기토록 설득하고 가솔린차 개발에 투입한다. 포르셰는 전기차·하이브리드카의 대중화를 이끌진 못했지만, 독일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고 ‘세기의 자동차 전문가’에 이름을 올렸다.

포드의 영향력은 내연기관차가 전기차와의 경쟁에서 완승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운전석의 위치까지 결정 지어버렸다는 데서 실감할 수 있다.

20세기 초까지 거의 모든 자동차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었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 오른편에 앉았던 데서 기인한다. 포드도 초기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으나, 모델T 때부터 왼쪽으로 바뀌었다.

이는 포드가 도입한 ‘오너 드라이브’ 개념의 결과물이었다. 포드는 마주 오는 차량을 시야에서 확보하려면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게 안전하고 논리적이라고 모델T 매뉴얼에 명시했다. 이후 모델T가 1500만대나 팔리자 왼쪽 운전석이 업계 표준이 됐다. 차선이 왼쪽인 나라에서만 동일하게 안전상의 이유로 오른쪽 운전석이 표준이 됐다. 그밖에 포드는 192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 모든 차고에 자가용을’이라는 슬로건에까지 등장했다.

한국이 수입한 첫 차가 포드라는 이야기도 있다. 1903년 대한민국 황실(고종)이 포드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이는 포드자동차가 만들어진 직후다. 다만 일각에선 고종이 구매한 차가 포드가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의 럭셔리 브랜드인 ‘캐딜락’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첫 수입차는 1년 뒤 터진 러일전쟁 와중에 자취를 감춰 진실게임은 영원히 미궁에 빠진다. 다만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순종황제어차’와 ‘순정효황후어차’가 1911년 들여온 캐딜락이다보니, 첫 차도 캐딜락이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어찌됐던 고종과 순종이 상당한 ‘얼리 어답터’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같은 자동차 역사 이야기가 오늘날 산업계에 주는 시사점은 여럿이다. 작게는 ‘내연기관 vs 전기차’의 대결이 약 120년 만에 다시 성사됐고, 승자와 패자가 이번엔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점.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 중 하나는 언제나 타이밍이라는 점. 2015년 디젤게이트를 계기로 전기차 개발에 먼저 나선 건 독일 폭스바겐이었지만, 실제 오늘날 전기차 패권을 쥐고 있는건 미국과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의 전기차 회사들이라는 과거의 ‘데자뷔’가 오늘날에도 펼쳐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여기에 하나의 시사점을 더하고 싶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다. 자동차라는 하나의 상품 속에도 이렇게 긴 서사(敍事)가 담긴다. 이 짧은 글에서도 포드·포르셰·캐딜락·폭스바겐·테슬라 차주(車主)들은 자신의 ‘애마’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상품·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기업이 상품·서비스를 알리는 과정을 보면 기능과 기술 설명에만 중점을 두지 스토리를 알리는데 공들이는 경우는 잘 없다.

모든 성공한, 심지어 실패한 상품과 서비스에도 스토리가 담겨있다. 조직 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품 개발에 전념한 직원부터 모든 임직원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린 CEO에 이르기까지 여러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있다.

결과 중심주의와 기술 발전 및 상품 출시 속도가 빨라지면서 상품·서비스 속 스토리의 중요성이 외면 받고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연 비즈니스 스토리의 힘은 약한가. 기술·기능·가격·사용자 경험만이 소비자 선택에 미치는 주요인인가. 스토리에 열광하는 소비자 비중이 그렇게 작은가. 상품·서비스의 스토리는 곧 기업의 스토리가 되고, 매력적인 기업의 스토리는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높이는 작용까지 한다고 믿는다.

비즈니스 서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간 대결의 서사 또한 훗날 3라운드에서 계속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상품·서비스에 꾸준히 담는 것이다.

이유섭 매일경제 차장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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