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장보고를 꿈꾸며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1923~2015) 총리는 한국 경제 발전에 관심이 많은 지도자였다. 그래서 생전에 한국에서 열린 각종 경제 포럼에 자주 참석해 강연을 했다. 리 총리는 한 포럼에서 한국이 미래에 무슨 산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가를 경제 전문가에 질문했다. 그러자 국내 전문가들은 당시 잘나가고 있는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등 분야를 주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리 총리는 미래에 무슨 산업이 잘나갈 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역으로 전문가들이 리 총리에게 싱가포르는 앞으로 뭘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되물어봤다. 리 총리는 확실한 산업이 있다고 답했다. 바로 물류였다. 그는 물류는 변치 않는 성장 산업으로 세계 교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물류 산업은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항상 1%포인트 이상 높게 성장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게다가 물류는 어느 국가나 희망하는 ‘굴뚝 없는’ 친환경 산업이라고 했다.

한국은 싱가포르 못지 않게 물류에 있어서 좋은 위치를 점하는 등 여건이 좋다. 특히 해상 항로가 세계 주간선 항로(Main Trunk Route)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한국-중국-동남아(싱가포르)-유럽으로 가는 항로의 중심에 있다. 남미가 자원 여건이 좋아도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항로의 중심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메인 트렁크 밖 남태평양에서는 계속 물건을 채워서 물류를 이동시킬 수 없다. 그래서 물류 비용이 많고,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산업혁명과 신대륙 개척을 이뤄낸 유럽도 물류를 통해 성장했다. 처음엔 아드리아해의 그리스와  사이 바다에서 물류의 역사가 물꼬를 텄고, 이후 지중해와 흑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십자군 전쟁 이후 동쪽이 막히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서쪽 대서양으로 나갔다. 대양에 나가서 신대륙을 개척하고, 새로운 물류망을 뚫었다. 유럽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한반도는 좋은 위치에 있다. 세계 주간선 항로가 지나는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부동항이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에는 겨울에 어는 항구가 많다. 그래서 한반도를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 부두 역할을 할 수 있는 물류 산업의 요충지로 꼽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물류 유전자(DNA)도 있다. 1200년 전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785~846)는 청해진을 설치해 신라와 당ㆍ일본을 잇는 국제 물류를 주도했다. 동북아 물류의 원조인 셈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등은 그를 반역자로 몰아 우리의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청해진 세력이 강대해지자 집권층과 식자층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달리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따로 기록을 해뒀는데,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었다. 김유신 기록에 장보고를 남겨뒀는데 심정적으로는 장보고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제 군주 사회에 있어 제일 몹쓸 사람으로 기록하는 것은 왕조에 대한 반역이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록했다. 삼국사기에 왕조에 대한 반역으로 기록돼 있다 보니, 야사인 삼국유사에서도 묻힐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 정사에서 장보고는 동시대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한반도인이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생활하며 어떻게 해적을 막고, 물물 교환이 번성하는 것을 봤다. 이것을 신라가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에게 해적을 막은 뒤 신라인을 보호하고, 동북아 바다를 신라의 것으로 만들었다. 결국 장보고의 물류는 중국을 넘어 아라비아, 이슬람 세계까지 갔다.

한국이 지금 처한 경제 상황과 당시 신라의 상황은 비슷하다. 경쟁국에 비해 자원이 빈약하고, 내수 기반이 약하다. 그래서 물류를 통해 대외로 경제 영역을 확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외국에서 기침하면 우리는 폐렴에 걸린다”고 주장하며 내수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학자도 있다. 장보고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런 생각이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라고 볼 것이다. 내수라는 것은 정해진 것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한국 산업은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고, 물류를 통해 경계를 벗어나야만 한다. 이는 장보고 정신과 맥락이 닿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세계 해전사에서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정 받고, 한국에서 조선 산업이 발달한 것도 장보고의 DNA가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올 여름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보면 일본의 갑작스런 침략에도 거북선과 같은 배를 급하게 만들고, 띄우고, 운항할 수 있는 DNA가 장보고 이후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장보고 시대에는 나침반이 없었다. 일본에서 당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북쪽에 산을 보고 서쪽으로 향하면 당나라를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비바람이 불면 방위를 알 수 없다. 당시 뱃길을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신라 출신 선원이다. 그래서 신라 배를 타면 안전하다는 의식이 있었다.  일본에서 당으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로도 불렸다. 신라 배를 못 타면 신라 선원이 한명이라도 있는 배에 타고 싶었던 게 일본 사람들이다. 이런 기록이 일본 문헌에 남아 있다. 현대 창업주 정주영(1915~2001) 명예회장이 큰 돈을 빌리기 위해 외국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은행 측에선 자원도 없는 한국이 무슨 조선소를 만들고, 어떻게 물류 산업에 뛰어드느냐 의심했다. 그러자 정 회장은 동전을 보이면서 “우리는 예부터 거북선을 만들었다”며 설득했다. 덕분에 대한민국 산업을 일으켰다. 장보고의 DNA가 이순신 장군을 거쳐 정주영 회장에게까지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과거는 1만명이 1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 시대였다. 군주나 귀족을 위해 몸을 바치는 시대를 뜻한다. 이제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와 같은 천재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됐다. 그 많은 기회가 물류에 있다. 앞으로 제2의 장보고, 제2의 정주영이 나와야 한다. 이런 위인이 몇 명만 더 나오면 한국 산업이 앞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물류 분야에서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수출입 물류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생각에서 벗어나 국제 무대에서 포부를 키워야 한다. 한국이 아닌 어느 나라에 가서도 물류를 취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바로 여러분이 세계 물류의 주인공이다.

강병철 중앙일보 기자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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