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패권전쟁과 대한민국

사람에게 쌀이 주식이라면 산업에 있어서의 주식은 반도체다. 반도체가 없이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주말의 여행을 책임지는 자동차에도 반도체는 필수다.

전세계 제조업에 사용되는 반도체 숫자는 최근 10년새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만 해도 자율주행기능이 추가되고, 엔진도 내연기관에서 모터(전기차)로 바뀌면서 기존보다 반도체 사용량이 10배 이상 늘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서버나 한때 가상화폐 채굴로 각광을 받았던 장비들도 모두 반도체 덩어리다.

반도체가 핵심자원으로 부상하면서 세계 슈퍼파워인 두 나라가 맞붙었다. 세계 최초로 반도체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왕좌 자리를 한국·대만·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물려준 미국과 전세계에서 반도체를 가장 많이 소비하지만 자급률은 형편없는 중국이 주인공이다.

중국이 반도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부터다. 중국은 2010년을 자국 제조업이 세계 최고에 오른 해로 인식하고 있다. 제조업 기술 전반에서 미국을 포함한 다른 선진국을 제쳤다는 의미다. 질(質)보다는 양(量)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이 때부터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자동차 등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프리미엄까지는 아니여도 가성비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이 전세계에 퍼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륙의 실수’라는 애칭으로 샤오미가 내놓은 가전·생활용품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때가 이 즈음이다.

중국이 아쉬원 하는 부분은 한자릿수에 머무는 반도체 자급율이었다. 전 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여기에 고루 들어가는 반도체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핵무기도 만들고, 항공모함도 제작하고, 우주선도 쏘아올리는 중국이다. 이러한 자신감으로 도전을 선언한 것이 반도체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반도체 개발을 위해 국가가 나섰다.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5개년 계획’을 세워 중화학공업을 일으킨 것처럼,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선언했다. 여기에 다양한 산업 육성 내용이 담겼지만 핵심은 반도체였다. 선언 당시 5%를 조금 넘는 반도체 자급률을 10년 내에 70%로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다. 2012년부터 집권하기 시작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도 여기에 힘을 실어줬다.

제조선언에 앞서 2014년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펀드도 조성했다. 1387억위안(약 27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설계와 제조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로 하는 등 ‘반도체 굴기’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는 크게 ‘설계->제조->후공정’의 단계로 진행된다. 기술 난이도가 높지 않은 후공정과 달리 설계와 제조에서의 기술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이 선두업체와의 기술격차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 곳에서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사람만 오는게 아니라 기술도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반도체 핵심 인재 유출과 관련해 중국 정부와 마찰을 빚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 전경>

중국 정부가 반도체 기술 인력을 빼왔든, 내부에서 스스로 개발을 했든지간에 중국의 반도체 역량 강화 노력은 일부 성과를 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중신궈지)다. 무(無)에서 시작한 회사가 현재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5%나 차지하고 있다.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나 2위인 와 비교할 때 기술수준은 낮지만, 다양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장점이다.

여기에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의 기술력도 미국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칭화유니그룹과 중국 후베이성이 함께 투자해 2016년 설립된 YMTC는 사실상 중국 정부가 소유한 국영 반도체 회사로 분류된다.이 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다. 이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말한다. 메모리 반도체에는 D램과 낸드가 있는데 D램에 비해 낸드의 기술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삼성전자 시안반도체공장 전경>;

고용량 메모리가 필요해지면서 셀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적층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제품은 5세대로 불리는 128단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서 운용중인 반도체 공장도 128단 낸드플래시를 만들고 있다.

YMTC의 주력 제품도 128단 메모리다. 아직 시장점유율은 3%에 불과하지만 수년내로 두자릿수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부품 공급업체 선정에 까다로운 애플이 최근 YMTC로부터 128단 낸드를 공급받는다는 소식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이를 접한 미국 의회가 애플에게 “불장난 하지말라”고 공개적인 경고를 해 최종 납품까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외신에서는 YMTC가 200단 이상의 낸드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0단 이상은 시장 선두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정도만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첨단 기술에 속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관련 회의 도중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 조 바이든트위터)>

만만치 않은 중국 정부의 기세를 보면서 조 바이든 정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취임 때부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 회복을 이유로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경우 대대적인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주는 반도체법을 최근 통과시킨데 이어, 한국-미국-일본-대만 등 반도체 강국 4곳을 묶어 ‘칩4’라는 이름으로 반도체 동맹을 만드는 구상도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이들 네 나리는 반도체와 관련해 각자의 장기가 있다. 미국의 설계와 장비, 한국과 대만은 제조, 일본은 소재, 부품, 장비 등에서 각각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야심을 꺽기 위해 구체적인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설계와 제조 분야에서 반도체 실력을 닦아왔지만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있어서는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 이 분야의 세계 최강자는 미국과 일본이다. 전세계 1위 반도체 장비 업체는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이고 2위가 미국의 입김을 잔뜩 받는 네덜란드의 ASML이다. 반도체 제조에는 8대 공정이 있는데 이 가운데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Photolithography)이 핵심으로 꼽힌다. 미세공정으로 갈수록 노광장비의 성능이 중요해진다. 극자외선(EUV)을 활용해 회로를 아주 미세하게 새길 수 있도록 하는 장비를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드는 곳이 ASML이다. 1년에 제작하는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원하는 곳들이 워낙 많아 ‘슈퍼을’로 불릴 정도다.

우수한 반도체 제조기술을 갖고 있어도 장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중국 정부의 이런 약점을 미국이 간파하고 10월 7일 첨단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는 조치를 내렸다. 그것도 D램과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등 공정별로 손발을 묶는 조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 상무부는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4㎚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현재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유지보수와 그 이상의 공정으로 진행하는데 필요한 장비 구입이 불가능하도록 한 조치다. 이에 따라 중국기업들이 앞으로 반도체 사업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자체적으로 장비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 전경>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싸움에 애꿎게 당하는 곳은 우리나라다. 중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 128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고, SK하이닉스는 상하이 인근 우시에 D램 메모리 공장이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인수한 인텔의 낸드사업부도 대련에 위치한 상황이다. 이들 기업이 공장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산 장비가 필수적이다. 미국 상무부가 중국에 공장을 둔 외국 기업에 1년간의 수출 유예를 주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공장 운영을 계획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진 것이다. 특히 반도체 장비의 경우 발주를 한다고 해서 바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소 2~3년의 기간을 두고 공정 업그레이드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이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가 한국기업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한국의 턱 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반도체 제조 기술이 당분간 정체되거나 후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한국 기업이 격차를 몇 년 더 벌린다면 반도체에 있어서 한국기업의 우위는 지속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승훈 매일경제 산업부 차장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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